일요일, 1월 18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거울> 상영은 전 모스크바에서와 마찬가지로 과학 아카데미 물리연구소 내에서도 흥미로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이 영화의 감독을 만나보고파 하는 자는 많았지만 극곳수의 사람들만이 뜻을 이룰 수 있었다. 어떻게 다르코프스키가 그와같이 철학적으로 심오한 작품을, 영화적인 수법을 통해 완성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우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애호가는 한 영화 속에서 구성, 줄거리, 주인공 그리고 보통 "해피 앤드"를 기대하는 데 익숙해 있다. 따라서 영화 애호가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속에서도 그와 같은 요소를 찾게 되며 결국 대부분은 실망에 가득 차서 극장을 나서게 된다. 왜냐하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속에서는 이런 요소들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무엇에 관한 영화인가? 인간에 관한 영화이다. 물론 배우 이노켄지 스모크투노프스키가 흉내내는 목소리의 주인공인, 예의 구체적인 인간에 관한 영화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너 자신에 관한, 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관한 영화다. 너처럼 살아갈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일 뿐인 인간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이 세상에 살고, 동시에 이 인간의 일부이기도 한, 이 세상의 일부를 이루는 자에 관한 영화이다. 인간이 자신의 삶으로써 과거와 미래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를 우리들은 가볍고 간단하게 감상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바하의 음악과 아르제니 타르코프스키의 시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이 영화는 우리들이 별과 바다 또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듯이 그렇게 보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들은 이 영화 속에서 수학적 논리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수학적 논리도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인간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설명해 주지는 않지 않는가?"

 "당신의 영화 <거울>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영화와 똑같았습니다. ... 한데 -  어떻게 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까? 그때는 정말 그런 바람이 불었고, 그런 소나기가 왔었죠. ... '갈카, 고양이 내쫓아라' - 할머니가 소리치곤 했었죠. ... 방 안은 어두웠습니다. 석유등도 그때는 꺼졌었죠, 그리고 내 영혼은 어머니에 대한 기다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 당신의 영화는 어린이의 의식이 깨어남을 얼마나 훌륭하게 보여 주고 있는지! 영화의 장면들은 정말 사실 그대로였습니다. ... 우리들은 정말 우리 어머니들의 얼굴들을 모릅니다. 얼마나 간단하고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입니까. 어두운 극장 안에서 당신의 재주로 비쳐지는 한 쪽의 스크린을 바라보면서, 저는 제 생애 처음으로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제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영화 <거울> 때문입니다. 이 영화에 관해서 저는 아직 단 한 글자도 써 보려 하지 안핬지만 이 영화로 저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 만일 두 명의 인간이 적어도 단 한 번만이라도 똑같은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들은 항상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설혹 한 사람은 빙하시대에, 또 한 사람은 원자시대에 산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인간은 최소한 근본적이고 인간적인 충동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할 것 입니다 - 자신의 충동이든 타인의 충동이든."

 "저는 제가 아는 사람들과 친구들로 이루어진,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관객들의 모임의 이름으로 그리고 이 모임의 추천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우선 먼저 저는 당신의 재능에 감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 영화관에서 상영된 당신의 영화는 모조리 보는 사람들의 무리가, 영화 잡지 <소련의 영화>에 발표되는 통계 숫자보다 엄청나게 많다고 하는 사실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비록 제게는 정확한 자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 친구나 아는 사람 가운데 아무도 그런 특수한 설문에 대한 답장을 써 보낸 적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영화관에는 모두들 다니고 있습니다. 물론 자주 가지는 못하지요.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는 꼭 봅니다. 당신의 영화가 너무나 드물게 상영되는 것이 정말 유감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영화나 책의 저자에게 한번도 제가 받은 인상을 적어 보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만은 특별한 경우입니다: 이 영화는 인간을 실어증의 저주로부터 구해 줍니다. 인간이 자신의 영혼과 자신의 생각을, 불안과 교만한 생각들의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는 한 영화 토론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물리학자와 시인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인간적이고, 정직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작가는 감사를 받을 만하다. 이 토론에서 발언했던 모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영화는 나 자신에 관한 영화입니다."

 "저는 늙고 이미 정년퇴직을 한 라디오 기사입니다. 직업상 예술과는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영화 예술에는 각별한 흥미가 있습니다. 당신의 영화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어른들의 감정세계를 마치 아이들의 감정세계인 양 꿰뚫어볼 수 있는 재주를 가졌습니다.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감지하기 위한 감각을 일깨워 주고, 이 세상의 언필칭 가치있는 것이 아닌, 진정한 가치를 보여 주고, 사건의 정곡을 찌르며, 영화 속 모든 세부적 장면도 하나의 상징이 될 수 있도록 하며, 많지 않은 표현 수단을 통해 철학적 일반성을 추출해 내고 ... 이 모든 것들은 당신의 재능, 오로지 당신의 영화 예술이 갖고 있는 재능인 것입니다. ..."

 "일주일 동안 나는 당신의 영화를 네 번이나 보았습니다. 단순히 영화만을 보려고 극장에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게 중요했던 것은, 적어도 몇 시간 동안은 진정한 삶을 산다는 것, 진정한 예술가 그리고 인간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 내가 동경하던 모든 것, 나를 흥분시키고 내게 역겨운 모든 것 - 이 모든 것들을 나는 마치 거울 속을 보듯 당신의 영화 속에서 보았습니다. 나를 짓누르는 것들, 나를 밝고 따뜻하게 해 주는 것들, 내게 살아가는 힘을 주는 모든 것, 나를 파멸시키는 모든 것. 처음으로 한 영화가 내게는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반복해서 당신의 영화를 본 이유였습니다 - 다시 말하자면 당신의 영화를 통해서 그리고 당신의 영화 속에서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인간은 도대체 단어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습니까? 인간은 자신의 일상적인 어휘 속에 몇 개의 단어를 사용합니까? 백, 이백, 삼백? 우리들은 우리들의 감정을 말(단어)로 표현합니다. 말로 슬픔, 즐거움 그리고 모든 내심의 상태를 표현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는 전혀 표현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표현하려 합니다. 로미오는 줄리엣에게 무척 아름다운 말, 선명하면서도 표현력이 강한 말을 합니다. 그렇지만 이 말들이 그의 가슴에서 용솟음치는 감정의 절반 정도라도 표현해 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로미오의 숨을 멈추게 하고, 줄리엣으로 하여금 사랑, 오직 사랑에만 전념케 하는 이 감정을, 그의 말은 도대체 얼마나 담아내고 있는 것일까요?
 그러나 말 이외의 전혀 다른 언어도 있습니다. ... 감정과 영상을 통한 새로운 교감 형식이 그것입니다. 이같은 접촉은 분리적인 것을 극복하고 말의 한계를 능가합니다. 인간 의지, 감정, 감동들이 인간들 사이의 장애물, 이제껏 거울의 이쪽과 저쪽, 문의 이쪽 저쪽에 서 있던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줍니다. ... 스크린의 범위는 점점 넓어집니다. 우리는 눈앞에 이제까지는 가려져 있었던 새로운 세계가 펼쳐집니다. 새로운 현실이 전개됩니다. ... 이 모든 것은 이제 더 이상 오로지 소년 알렉세이를 통해서만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타르코프스키는 이미 스크린의 저쪽 편에 앉아 있는 관객들에게 직접적인 관계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의 죽음은 이제 없으며, 이제는 불멸성이 있을 뿐입니다. 시간은 이제 유일하고도 파기할 수 없는 요소인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 "조상들과 손자들 모두를 위한 유일한 테이블..." 물론 이 영화에 접근하는 방식이 달리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이 영화에 상당히 감정적으로 접근하였습니다. 어머니의 경우에는 어떠했습니까? 답장을 기다립니다."

 영화를 찍을 수 없이 암울하고도 길었던 시기에 대부분 집필된 이 책과 더불어 (이 암울의 시간을 나는 내 운명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강제적으로 깨뜨린다) 나는 결코 그 누구도 가르치려 하지 않으며, 나의 견해를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라고 하는 젊고 매력적인 예술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추구하면서, 나 자신을 정립하고자 하는 필요성에 의해서, 그리고 이 가능성에 관해 아직도 거의 연구된 바 없는 관계로 이 책은 집필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내게 포괄적이고도 독립적인 자아를 찾기 위한 일종의 자기 추구인 셈이다. 왜냐하면 창조적인 작업은 어떤 절대적인 규격에도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은 세계를 수용하는 보편적 필요성, 그러니까 인간들을 생생할 현실과 연관시키는 저 수많은 상황 국면들이 중요한 것이다.